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이 14세 (문단 편집) === [[여자]] 관계 === * [[스페인]]의 국왕 [[펠리페 4세]]의 딸 [[마리아 테레사(스페인)|마리아 테레사]][* 참고로 마리아 테레사는 루이 14세의 고모(이자 외숙모)인 프랑스의 엘리자베트와 루이 14세의 외숙부(이자 고모부)인 펠리페 4세의 딸이다. 따라서 루이 14세와는 내외종 사촌 지간이였다.]를 왕비로 맞이했지만 [[정략결혼]]이었던터라 관계는 소원한 편이었다. 마리아 테레사는 경건한 분위기의 스페인 궁정에서 자란 데다가 재치가 없었던터라, [[유럽]] 최고로 화려한 프랑스 궁정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았다. 그래도 루이 14세는 마리아 테레사에게 애정이 없었던 것과는 별개로 왕비로서는 나름대로 권위를 세워주었다. 루이 14세는 마리아 테레사가 죽을 때까지 1주일에 세 번 왕비를 방문하는 관습을 철저히 지켰고, 애인들과 즐길 때 즐기더라도 잠은 대부분 아내의 방에서 잤으며 부부관계도 어느 정도는 챙겼다고 한다. 그래서인지 사이가 더 나빠지지는 않았다. 이후 마리아 테레사가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, 루이 14세는 "그대가 짐을 처음으로 슬프게 하는군."이라고 말하며 슬퍼했다. 여담으로 마리아 테레사는 성품이 선량하긴 했지만 [[압스부르고 왕조|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]]에 만연한 [[근친혼]]의 후유증 때문인지 다소 우둔했다. 때문에 마리아 테레사가 굶주린 백성에게 브리오슈라도 주자고 했던 것이 '[[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]]'로 왜곡된 것 아니냐는 말도 있을 정도다. 정실 왕비인 마리아 테레사와의 사이에 여러 아이를 두었으나 모두 일찍 죽었고, 적손(嫡孫)은 오로지 뒷날 [[루이 15세]]가 되는 증손자의 가계와 [[스페인 국왕]]으로 즉위한 차손 [[펠리페 5세]]의 가계만이 남았다.[* 루이 15세의 계통인 직계는 1883년에 남계가 끊어져서 오늘날 부르봉 왕가의 남계는 펠리페 5세의 계통인 스페인 [[보르본 왕조]]와 그 분가들, 그리고 루이 14세의 남동생 [[필리프 1세(오를레앙)|필리프]]의 후손인 오를레앙 가문과 그 분파만 남아있다. 다만 보르본 왕조의 분가에 해당하는 보르보네파르마 가문의 시조 [[필리포 1세(파르마)|필리포 1세]](펠리페 5세의 7남)가 루이 15세의 사위이므로, 루이 15세의 자손 역시 여계로는 현재까지 이어진다.] 수많은 [[메트레상티트르]](Maitresses en Titre), 즉 왕의 [[정부(관계)|정부]]들에게서 [[사생아]]들을 보았고 자녀들에게는 상당히 자상한 아버지였다. 사생아들도 궁정에서 직접 안아 길렀으며 자란 뒤에는 작위와 재산을 아낌없이 주었다. * 루이 14세의 첫사랑은 섭정이었던 [[추기경]] 마자랭의 조카 [[마리 만치니]]였는데, 그녀는 국왕과 결혼할 수 있는 신분이 아니었고 둘의 관계를 반대한 마자랭과 모후 [[안 도트리슈]]에 의해 결국 [[이탈리아]]로 되돌아가고 말았다. * 친동생 [[필리프 1세(오를레앙)|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1세]]의 아내, 그러니까 제수씨인 [[헨리에타 앤]][* [[잉글랜드 왕국|잉글랜드]]의 [[찰스 1세]]와 루이 14세의 고모 [[앙리에트 마리]]의 딸이다. 루이 14세와는 내외종간.]과 염문을 뿌렸고, 이후에는 헨리에타의 시녀인 [[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]]와 연애하여 아이들을 낳았다. * 라 발리에르와의 관계도 소원해진 후에는 신하인 몽테스팡 후작의 아내와 바람이 나서 꽤 오랫동안 동거하게 됐고 라 발리에르는 밀려났다. 둘 사이에는 6명의 아이가 태어났는데, 루이 14세와 [[몽테스팡 후작부인]]은 당시 교양있는 부인으로 이름나 있던 맹트농 부인에게 아이들의 양육을 부탁했다. 루이 14세는 몽테스팡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퐁탕주 부인 등을 또 정부로 삼았고 자신이 라 발리에르처럼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 한 몽테스팡은 마녀를 찾아가 흑미사를 올리며 왕의 마음을 붙잡으려고 했는데, 결국 이 마녀가 잡히면서 연루되어 있던 몽테스팡은 총애를 잃었다. * 독실한 [[가톨릭]] 신자였던 맹트농 부인은 왕과 사랑에 빠지기 전에 그에게 "불륜을 그만두고 아내를 소중히 여기라"는 충고를 했고, 루이 14세가 그 말에 따라 몽테스팡과 결별했다고 한다. 하지만 왕은 또 맹트농에게 빠졌고 얼마 뒤에 마리아 테레사 왕비가 죽자 이번에는 아예 맹트농과 결혼해 버렸다. 물론 [[귀천상혼]]이라서 공식적인 왕비가 될 수는 없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